독서

시선으로부터

_0ina 2020. 9. 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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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

"붓다도 제자들한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는데, 누가 그 말을 듣긴 들었냐? 온 아시아가 절로 뒤덮였지, 십 주기니까 딱 한번만 지내고 싶어."

p.11

우윤은 할머니가 행복했는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가진 조각들이 다르네, 할머니가 나눠준 조각들이 다른가보네, 하고 말하고 싶었지만 역시 하지 않았다.

p.13

누군가의 부인이란 설명이 먼저 오는 것에 아연함을 느꼈었다. 이렇게 대단한 걸 그려도 그보다 중요한 정보는 남성 화가의 배우자란 점인지,

p.14

대중의 가벼운 사랑과 소수의 집요한 미움을 동시에 받았다. 쉽사리 희미해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대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았는데 세상을 뜨고 십 년이 지나자 사람들이 어디선가 자꾸 조각 글과 영상들을 발견해냈다.

p.16

분노를 연료 삼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비웃어주고 싶었다. 당신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나와 내 할머니만 알고 있다고 쏘아붙이고 싶었다.

p.17

폭력성이나 비틀린 구석이 없는 상대와 좋은 섹스.

p.18

베이직을 갖춘 사람이 오히려 드물다고 봅니다. 안쪽에 찌그러지고 뾰족한 철사가 있는 사람들, 배우자로든 비지니스. 파트너로든 아무데도 못 갖다 써요. 꼭 누군가를 해치니까.

p.18

사람에게 모든 것을 구하면 실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p.19

사흘에 한 번씩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들 말고는 결혼을 안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p.21

낙관을 위해, 현재에 집중하기 위해,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만한 게 없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키워놓았더니 미국으로 날아가버렸지, 내 딸....

p.21

난정은 우윤이 보고 싶어 내내 우는 대신 계속 읽었다. 읽고 읽었다. 소원을 비는 사람처럼 책탑을 쌓았다. 딸이 남기고 간 빈 공간을 책으로 채웠다.

 ? 아인가베 Eingabee

? 아우스가베 Ausgabe

p.23

"그렇게 많이 읽는데? 별의별 것에 대해 읽는데?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애벌레처럼 읽는 사람은 결국 쓰게 되는 거야."

p.23

"그렇게 단언하시면 안 돼요. 세상에 단언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고, 단언하는 사람은 쉬이 믿으면 안 된다고 어머님이 네번째 책에서 한 단원 분량으로 말씀하셨잖아요?"

p.24

"말을 너무 많이 했어.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사실 잘 안나. 너희 먹여 살리려고 그런 건데 이런 배응망덕한 것들..."

"엄마가 재작년에 자식들에겐 절대 보상을 바라면 안 된다고 신문에 썻잖아.

p.24

언제나 교양인은 아니었다. 외국어도 잘하고 욕도 잘하는 사람이었고, 어쩌면 그것은 같은 능력일지도 몰랐다.

p.25

일 년에 한 번, 혹은 두 번 딸을 만났고 그것은 이제 살면서 운이 좋아야 서른 번 남짓 더 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p.27

파들파들한 신경으로만 포착해낼 수 있는 진실들도 있겠지요. 단단하게 존재하는 세상을 향해 의문을 제기하는 모든 행위는 사실 자살을 닮았을 테고요. 그래도 너무 많이 잃었습니다.

p.34

명백한 피해자는 이쪽이니까 아무도 명은을, 명은의 혼자-됨과 혼자-삶을 힐난하지 못했다. 요즘과는 달리 명은의 젊은 날엔 혼자 사는 이유를 주변에 납득시켜야 했으므로, 명은은 파혼을 기차게 이용했고 잘 먹혀들어간 것에 만족한 후 나쁜 기억을 별로 되새김질하지 않았다.

p.35

존재하지 않는 무덤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하지 않으며 첫째와 둘째가 지난 십 년을 반추했다.

p.36

공부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다면 좋았을 터지만 세상일은 마음대로 풀리지 않으며 좋은 사람도 나쁜 일을 당한다.

p.36

우리가 했던 악수는 마치 계약 후에 나누는 악수와 같았는데, 맞잡은 손이 참 단단했는데, 이제 나 혼자만 남아 약속을 지키고 있다.

p.38

일 년 내내 회색 옷에 검은 캡모자를 썼다. 그러면 박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했다.

p.38

"좀 화려한 색깔 새를 좋아하면 좋을 텐데, 걔도 참."

p.39

"아니, 뭐 내가 레이스 치마를 입히겠대? 줄창 회색만 입지 않았으면 하는 거지. 내가 디자이너인데 딸이 색깔에 관심이 없는 건 속상하다고. 세상에 색깔들만큼 멋진 게 또 없는데.

p.39

세상 사람들이 모나크나비의 이동에는 관심이 많으면서 된장잠자리엔 너무 없다고, 지극히 인간중심적인 외모 차별이라고 늘 분개해 있었다.

p.39

치우치고 치우친 둘째는 학교를 그저 견디고 있었고, 그것에 대해 걱정하는 건 세상에 경아뿐인듯 했다.

p.41

아빠와 두 엄마를 생각하면 각기 다른 마음으로 슬펐지만 특별한 날이 아니면 슬픔이 일상을 지배하진 않았다.

p.41

"내 인생, 남편은 잠자리 쫓아다니고 딸은 새 쫓아다니고."

p.41

이제 없는 사람들이 운전하는 차에 좁게 끼여 앉아 투닥거리던 시간들이.

p.41

"아, 그럼, 영혼이 닮을 수 있지."

p.42

어릴 때는 그 삶을 원했던 적도 있는 듯한데, 이제는 이 삶이 아닌 삶을 상상할 수 없으니 짐작 불가능한 시간을 저도 모르게 통과해온 셈이었다.

p.43

고되고 고되면서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는 게 신기했다. 그 모든 일을 겪고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다니

p.43

그게 인간이란 생각을 했다.

p.44

마우어는 전 세계가 자신에게 암시를 준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지침을 주고 방향을 주고 영감을 준다고 말이다.

p.44

마우어가 여행 수집품처럼 나를 수집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에는 나름의 맥락이 있었다.

p.44

20세기 여자들이 교육의 기회라는 말에 따라나섰던 수많은 길들은 정말 교육에 닿기도 했고, 위험한 나락에 닿기도 했다. 

p.44
그럼에도 교육과 기회를 원했던 여자들을 생각하면 울고 싶어진다.

p.44
벌어질 일들을 하나도 모른 채, 신문에도 나는 유명한 사람이니 좋은 사람일 거란 두번째로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혀 도박을 했다.

p.45
마우어가 나를 그의 ‘하와이안 걸로 불렀던 것은 나에게도 하와이 사람들에게도 무례한 대접이었다.

p.45
“엄마, 제발...... 난 밤에 일하는 사람이잖아. 깰 때까지 안 깨우면 안 돼?”

“밤에 일하는 게 뭐 자랑이라고? 얼른 가서 화수도 깨워.”

p.47
“엄마 세대는 외모에 너무 집착해. 눈만 마주치면 평가하는 말들을 한다고. 하루라도 좀 외모 생각을 하지 않고 보내봐.”

p.48
형편없는 공간에서 다시 형편없는 공간으로 뜀뛰기를 하며 살면서도 독립을 유지하고 가끔만 부모의 집에 들렀다.

p.49
기대대로 되지 않았을 때 꺾여버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p.50
지수는 “네가 화수 동생이라고?”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자라난 오락부장이었다.

p.50
지수는 화수가 졸업과 취업과 결혼을 유능하게 운영되는 소매점의 사장님처럼 해내는 것을 보고 어이없어했다.

p.51
정말 여기는 이해할 수 업어. 이따위로 엉망인데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단 말이지?

p.51
“나 엉망이야?”
“아니.”
“그럼 진창이야?”
“아니야.”

p.51
요즘은 그렇게 묻지 않게 되었다. 세상이 엉망이니까 자신도 조금 엉망이어도 될 거라고.

p.52
호방한 문지기처럼 지키고 서서 싹둑싹둑 썰어냈다. 아무것도 다행은 아니었다고 외치곤 침묵과 잠 속에 잠긴 화수가 방해받지 않을 수 있게.

p.53
그저 하와이가 화수를 반겨줬으면 좋겠다고, 지수는 생각했다.

p.310

말하는 여자는 미움받으니까. 뭐 기왕 미움받고 있는 내가 해버리자. 그런 마음도 있었습니다.

p.310

스스로를 아낄 줄 아는 사람들은 노출되는 자리를 신중히 삼갈 줄 아니 누군가는 내 또래 여자들의 이야기를 해야 했지요.

p.310

했어요, 그러나 말이란 건 그렇습니다. 일관성이 없어요. 앞뒤가 안 맞고, 그때의 기분 따라 흥, 또다른 날에는 칫, 그런 것이니까 그저 고고하게 말없이 지낼 걸 그랬다 뒤늦은 후회도 합니다.

p.312

다른 삶을 원하는 얼굴, 자기 삶을 계획하는 얼굴, 가진 것 없이 비극에서 시작해도 뭔가를 이루고 말 얼굴이었다. 턱을 청록색 퍼 워머에 묻고 먼 탈출에 눈을 던진 채였다.

p.315

"심시선 여사 닮았으면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p.315

우윤이는 약해 보이지만 시선으로부터 뻗어나왔지. 지지 않고 꺾이지 않을 거야. 그걸로 충분할거야.

p.316

우리는 추악한 시대를 살면서도 매일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던 그 사람을 닮았으니까. 엉망으로 실패하고 바닥까지 지쳐도 끝내는 계속해냈던 사람이 등을 밀어주었으니까. 세상을 뜬 지 십 년이 지나서도 세상을 놀라게 하는 사람의 조각이 우리 안에 있으니까.

p.318

관여하는 감각이 다른 장르가 어떻게 교차되는지 다시 못할 경험을 했다.

p.318

여느 때처럼 친밀감과 이해를 향해 썼다. 소설을 쓰면 쓸수록 나는 열심히 숨기고, 독자분들은 가끔 내가 숨기지 않은 것도 발견해가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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